나는 목사고 이 책의 저자인 교회 언니는 사모다(언니가 사모라는 호칭을 싫어하긴 하지만 말이다). 이 언니를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. 여하튼  교회 언니가 말씀하시는 동안 얌전히 앉아 귀담아 듣는 게 상책이겠다.

책을 읽는 시간 내내 교회 언니 앞에 앉아 가르침을 듣는다. 훈계를 듣는다. 질책은 점점 강해진다. 나는 어쩌면 <교회 언니, 여성을 말하다>에 등장하는(사실, 분명하게 등장하지는 않는다) 못난고 무책임한(?) 목사 남편과 별반 다르지 않다. 책을 읽는 내내 교회 언니 남편이 곧 나라는 착각이 들었으니 말이다.

교회 언니가 목사인 나를 강하게 나무란다. 교회 남자들을 질책한다. 예수 좀 똑바로 믿으란다. 왜 교회가 요모양 요꼴이냐고 다그친다. 언니가 나를 향해 소리친다. 사는 게 힘들단다. 두 번의 유산과 한 번의 사산 때문이 아니라 남자들 때문에, 이놈의 남자들이 여자들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아 사는 게 힘들단다. 자신이 여자라서 사는 게 힘들단다. 그리고 그 질책의 칼날은 교회를 향하고, 교회의 남자들을 향하며, 교회의 목사들을 향한다.

"나는 고학력자이고 신체 건강하지만,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생이 고달팠다. 그 고달픔에 교회가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아 교회의 가르침을 비판했다."(214쪽)

백 번 맞는 말이다.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. 지금 교회가 하는 짓거리, 교회 남자들이 하는 짓거리가 성경을 닮아 있지 않다는 데야 할 말이 없다. 그게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니고, 기독교가 아니라는 데야 할 말이 없다. 성경을 들이대며 교회 좀 똑바로 하라는 데야 할 말이 없다.

누구는 교회 언니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느냐고 말할지 모르겠다. 맞다. 분명히 한쪽으로 치우쳤다. 하지만, 현재 상황이 반대편으로 치우쳐 있다면, 그 반대편으로 치우쳐야 균형이 맞지 않겠는가?

물론, 나름 변명도 하고 싶다.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사는 게 쉬운 줄 아는가? 어쩌면 여자로 사는 것보다 남자로 사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. "우리 가족 중에 아빠는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?"는 어느 아이의 우스개소리처럼,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빠는 인정받지 못한다. 가장의 권위, 그런 건 엿바꿔 먹은 지 오래다. 나는 시쳇말로 한국 아빠들을 "머슴"이라고 부른다. 머슴 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머슴이다. 머슴은 세 끼에 새참까지 얻어 먹고, 새경까지 꼬박꼬박 받는다. 하지만 한국 아빠들은 죽어라고 일해서 몽땅 아내에게 갖다바치지만 하루 한 끼 얻어먹기도 눈치 보인다. 용돈을 타 써야 한다. 자녀 교육 문제에 끼어들라치면, 아내가 눈을 치켜뜨며 겁을 준다. 순간, 아빠는 깨갱 소리도 못하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. 엄마가 아이를 혼낼 때, 아빠는 절대 아이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. 부부싸움이라도 하고서(사실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하는 거다) 집을 나서지만 갈 데가 없다. 이렇게 희생하며 사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, 교회 언니는 딱 잘라 "이건 사랑이 아니다"고 말한다. 제발 "날 좀 사랑해줘"란다.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?

이건 내가, 남자인 내가, 아빠인 내가 보는 21세기 대한민국 아빠들의 모습니다. 교회 언니도 알고 있겠지만, 남자들의 고충도 이해해 주면 좋겠다. 어쨌거나 저쨌거나 사는 건 다 힘들다. 남자도 여자도....

교회 언니는 아픔을 많이 겪은 사람이다. 그러나 그 아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도 많이 체험한 사람이다. 나는 늘 말한다. "믿음이란, 주어진 환경에 대한 반응"이라고. 교회 언니의 한 마디가 이런 내 믿음에 오금을 박아주었다.

"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고통 없는 마취제가 아니라, 고통을 직면할 수 있게 해주는 은혜이다."(203쪽)

몇시간 책을 읽었더니 무릎이 저리다. 지난번 축구시합이후로는 왼 무릎이 영 시원찮다. 눈물이 찔끔한다. 얼굴이 화끈한다. 가슴이 찡하다. 종아리라도 걷고 싶은 심정이다. 대한민국 남자들이여, 교회 언니의 외침을 들어보시라. 특히, 대한민국 교회의 남자들이여, 남자 목사들이여, 교회 언니 말을 들어보고 예수 잘 믿으시라.... 교회 언니, 고마워요. 행복하세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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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한때 여성 해방에 앞장 섰던 교회가 이제 두더지 게임 하듯,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싶다고 고개를 드는 여자들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기에 바쁜 것 같다. 그것도 성경과 하나님을 들먹이면서 말이다.(13쪽)

* 자신의 시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이다. 그리스도인에게 자기 인생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할 현장이다.(25쪽)

*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라고 주신 시간은 현재이다. 현재를 현재답게 살려면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. 우리에게는 지금의 그대로도 괜찮다는 용서가 필요하다. (40쪽)

* 사랑은 내가 상대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, 상대방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기도 하다. 내가 상대방을 위해 무언가 해주는 것도 사랑이지만, 상대방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도 사랑이다.(76쪽)

* 교회는 자신의 보수성을 지키는 것이 곧 교리와 순결성을 지키는 것이라 여기고, 그것이 사회에 대항하는 무기인 양 더 적극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고수한다.(109쪽)

* 우리는 보통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를 추하다고 한다. 그런데 그보다 자기 욕망을 종교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더 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. 기독교인은 욕망이 거세된 사람이 아니라,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사람이다.(117-118쪽)

* 공동체의 이상에 비해 현실이 쉽지 않은 이유를 나는 개인주의의 부족으로 꼽는다.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잘해주는 친절도 개인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오지랖이 되기 쉽다.(170쪽)

* 현재의 세상에서 은혜는,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. 만사형통한 것, 무조건 덮어주는 것이 은혜가 아니다. 만약 은혜가 그렇다면, 우리에게 성화를 요구하는 교리가 설 자리가 없게 된다.(201쪽)

* 우리는 정중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극복해가는 방법을 훈련받지 못했다. 그래서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,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고 관용이라고 생각한다. 이것이 우리의 착각적 은혜 중 하나이다.(202쪽)